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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6 22:59
나는 인생에서 사소한 순간까지 사진이나 영상으로 저장하고싶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즈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몇 년 전 부터 혈액암으로 고생하시었기에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니었다.
그래도 죽음이란 게 언제 죽는지 모르기에 가족들 모두가 사망소식을 접하고 가슴 아파했다.
지금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당시 엄마의 기분은 어땠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장례식을 하면서도 나는 까불거리며 닌텐도3d에 내장되어있는 카메라로 장례식장 모습을 찍었다.
외숙모에게 심정이 어떠냐며 기자처럼 물어보기도 했다.
외할아버지의 사망은 내가 경험한 첫 죽음이었다.
어릴 때 동물도 키워본적이 없어 나는 죽음에 대해, 그걸 경험하는 주변사람들의 기분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다 장례식 마지막 날 외할아버지의 존재의 소멸에 나는 머리가 띵했다.
더 이상 상냥한 미소로 나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알사탕을 쥐어주시는 존재가 없어졌음을 그때서야 실감했다.
철이 없었다.
장례식이 있고 2년 뒤, 나는 닌텐도에 또 하나의 영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할아버지 집에서 찍었던 3분정도의 짧은 동영상.
주변 사람들을 찍으며 집 안을 기록한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게 외할아버지의 유일한 동영상이었다.
사진은 있었지만 동영상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잠깐 기록했던 그 짧은 순간이 그의 유일한 살아있는 기록이었다.
엄마에게 그 사실을 알리며 닌텐도를 켰다.
닌텐도에 꽂는 SD카드에 저장되어있었을것이다.
하지만 SD카드는 이미 오래전 버려진 상태였다는걸 깨달았다.
닌텐도 칩이랑 SD칩 모두 들어있는 봉투를 엄마가 쓰레기로 착각하고 버렸었다.
그래서 우린 모두 망연자실했다.
엄마도 정말 실망했을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꼈다.
이제 외할아버지라는 존재는 동영상에 없다.
그 어떤것도 그의 움직임을 재현하지 못한다.
사람이 죽고 기록이 없으면 그것은 너무 허무하다.
그를 아는 사람마저 모두 죽어버린다면, 그의 존재는 누가 증명해줄까?
그가 세상을 살아가며 느끼고 생각하고 이루었을 소소한 일상의 성취도 모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록이 없는 상태의 순간은 곧 추억이된다.
그리고 잊혀지면 없는 일이 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목격자도 없다.
증인도 없다.
그렇게 사라져간다...